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를레앙 공방전 (문단 편집) === 솔즈베리 백작의 속공전 === 잉글랜드군이 오를레앙을 갓 포위했을 때, 오를레앙 수비군은 정규군 200명, 도시 민병대 3,000명이었다. 솔즈베리 백작은 구원군이 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고 여기고 공세를 개시해 오를레앙 인근의 올리베 마을을 장악하고 프랑스군을 루아르 강의 오른쪽 강둑에서 밀어냈다. 그 후 오를레앙 인근의 루아르 강 동쪽 강변에 있는 134m 높이의 몽생로방 언덕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오를레앙 시민들은 이에 맞서 오를레앙 교외의 모든 준택과 주택을 파괴해 적의 피난처 역할을 하지 못하게 했고, 주변의 농지와 숲을 황폐화시켜서 적이 오래 머무르기 어렵게 만들었다. 10월 21일, 잉글랜드군은 투렐 요새를 공격했지만 치열한 백병전 끝에 격퇴되었다. 이후 정면 공격을 포기하고 투렐 요새 앞의 토성을 곡괭이로 파헤치기로 했다. 이 시도는 성공했고, 토성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투렐 요새로 도주했다. 솔즈베리 백작은 토성이 있던 곳에 대포를 배치한 뒤 투렐 요새를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결국 투렐 요새 성벽이 허물어질 기미가 보이자, 프랑스군은 10월 23~24일 밤 투렐 요새를 버리고 다리의 마지막 경간을 파괴한 뒤 본성으로 후퇴했다. 10월 24일, 솔즈베리 백작은 투넬 요새의 2개 탑 중 하나에 올라가서 창문을 통해 도시를 바라봤다. 그런데 노트르담 탑에 설치된 대포가 그 쪽으로 쏜 포탄이 그의 머리에 명중했고, 그는 한쪽 눈이 찢어지고 얼굴이 짓이겨진 채 쓰러졌다. 이후 멍 슈흐 루와흐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11월 3일에 사망했다. <오를레앙 공방전 일기>의 저자는 이 일에 대해 다음과같이 논평했다. >잉글랜드인에게는 매우 큰 불행이었지만 왕국에 큰 축복이었다. 그는 잉글랜드 군대와 나라의 사령관으로서 가장 유명하고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